[르포]GTX에 갈라진 '이웃사촌'…청량리·왕십리 갈등 '격화'
청량리 주민들 "왕십리역 반대" 현수막 내걸어
서명운동도 돌입 예정…"완행열차 만드냐" 불만
왕십리 주민들 "시민편의 중요…이기심 거둬야"
곳곳서 노선·역 놓고 갈등 심화…민심 분열 조짐
[서울=뉴시스] 18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일대 공사가 진행중인 롯데캐슬 스카이 L-65 안전펜스에 'GTX 왕십리역 신설반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2021.06.18.
지난 18일 오전 청량리역 일대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을 둘러싼 안전펜스 곳곳에는 'GTX 왕십리역 신설반대'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이 일대 주민들은 현수막 부착을 전방위로 확산하고, 조만간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등 대응 수위를 한층 높일 예정이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 17일 국토교통부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더 심각해졌다.
국토부는 당초 양주 덕정역에서 수원역까지 약 74.8㎞ 구간을 잇는 GTX-C 노선을 계획하며 기본계획에 양재, 삼성, 청량리, 광운대, 창동, 의정부 등 10개역만 포함시켰다.
하지만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기존 10개 역 외에 왕십리역과 인덕원역을 추가하는 방안을 입찰제안서에 포함시켰고, 국토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존 정차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입찰제안서에 역 신설 방안이 포함됐다고 해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 업계에서는 신설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해 12월 입찰 공고를 내면서 최대 3개 역을 신설할 수 있도록 허용해 추가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이다.
다만 추가 재정투입이 없기 때문에 비용 증가분은 사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또한 사업신청자가 추가 역을 건설할 때 표정속도(역 정차 시간을 포함한 속도)가 시속 80㎞ 이상이 되도록 열차 운영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시공사와 지자체가 비용을 분담하되 시속 80㎞ 이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추가 역을 신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청량리 롯데캐슬 스카이 L-65 입주민들은 공사현장 안전펜스에 GTX 왕십리역 신설을 반대하는 내용을 현수막을 부착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청량리역 일대에서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인 한양수자인, 효성해링턴, 힐스테이트 청량리 더퍼스트 등 다른 입주 예정 주민들도 반대 대열에 합류하고 조만간 온라인 서명운동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주민들은 정차역이 늘어날수록 GTX 속도가 느려져 '완행열차' 수준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청량리역에서 불과 2.3㎞ 떨어진 곳에 역을 신설하는 것은 정치논리로 밖에 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양 수자인 입주 예정자인 Y씨는 "정부가 급행열차라는 취지하에 10개 역을 추진하기로 해놓고 계획에 없던 2개역을 끼워 넣으면 기존 취지가 변질되고 '완행열차'로 전락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처음 계획을 바꾸는 바람에 주민들의 혼란과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18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일대 공사가 진행중인 롯데캐슬 스카이 L-65 안전펜스에 'GTX 왕십리역 신설반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2021.06.18.
또한 주민들은 추가 정차역을 신설하면 그만큼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개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청량리역 인근 L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7~8㎞ 떨어진 곳도 아니고 불과 2㎞ 떨어진 곳에 역을 추가로 짓겠다는 것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표 장사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라면서 "특히 이 지역 주민들은 공사 기간이 늘어나 개통이 연기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와 원성이 크다"고 전했다.
인근 K 공인중개업소 대표도 "애초에 계획에는 없었던 것인데 왕십리 주민들이 지역 이기주의로 추진하는 것에 대해 청량리 주민들은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조만간 청량리 지역 곳곳에 현수막을 붙이고, 반대 서명운동도 곧 시작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왕십리역 일대 주민들은 생각이 다르다. 왕십리역 인근 B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청량리역은 생기면 좋고, 다른 쪽에 역이 생기면 반대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면서 "서울 시민들이 환승하기 편하고 여러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더 합리적인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왕십리역 인근 D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교통이라는 게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빠른 속도로 갈 수 있게 추진하는 건데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접근성이 떨어지면 안하는 것보다 못한 것 아니냐"라면서 "청량리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왕십리 지역을 견제해서 집값을 올리려는 이기심이 배경에 깔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GTX-C 노선을 두고 다른 지역들도 저마다 불만과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아파트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제시한 노선은 대심도(지하 40m 이상 깊이)의 지하터널을 통해 은마아파트 밑을 관통하도록 설계됐다.
이를 두고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안전과 소음, 진동을 이유로 노선의 우회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은마아파트소유자협의회(은소협) 관계자는 "은마 지하를 관통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며 "주민들이 현대건설 측에 제안한 우회노선이 있는데, 앞으로도 협의를 계속해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노선 공사가 건물을 짓는 기초 파일을 박는 암반 밑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안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GTX-A 노선에서도 서울 행정심판위원회가 청담동 주민들이 주택가 지하로 노선이 통과하는 것을 반대하자 굴착허가를 내 주지 않은 강남구청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에 입찰제안서에 제외된 의왕시도 GTX-C 노선에 의왕역 추가 신설을 계속해서 추진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있고, 노선 연장을 요구했던 동두천시도 시민 서명운동에 나설 뜻을 밝히는 등 GTX 문제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GTX-D 노선을 놓고도 정부와 지역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김포와 인천 시민들은 강남까지 연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강동구와 하남시까지 가세한 상태다. 또한 구리시는 GTX-B 노선에 갈매역 신설을 요구하고 있어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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