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2차 가해 조심하다 피해자 방치…난감해진 軍
女중사 피해사실 들은 주임상사 함구 논란
함구하는 동안 女중사 스트레스 가중 추정
피해사실 보고 시 2차 가해 처벌 가능 우려
현행법과 국회 논의 혼선…군인 혼란 유발
[서울=뉴시스]해군 상징. 2021.08.12. (자료=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사건이 벌어진 후 군인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 여군의 피해 사실을 함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2차 가해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사건을 공론화해야할지를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해군에 따르면 지난 12일 극단적 선택을 한 여군 A중사는 지난 5월27일 같은 부대 주임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A중사는 주임 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주임 상사는 A중사의 말대로 보고를 하지 않았다. 이후 추가적인 성추행 피해는 없었지만 A중사는 가해자와 마주치면서 심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A중사는 2개월여 만에 정식으로 신고했지만 며칠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평택=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해상 함대 전력의 기동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2021.03.26. [email protected]
군에서는 이번 사건을 놓고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임 상사의 선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주임 상사가 A중사의 의사를 거스르고 상부에 보고하는 등 섣불리 공론화했다가는 자칫 2차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군은 공군 여군 이모 중사 성추행 피해 후 사망 사건으로 성추행 사건 자체를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다. 이 중사 사건 당시 카톡방을 통해 피해 사실을 유포해 2차 피해 원인을 제공한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정보통신대대장 F중령 등 16명은 과실이 중대하다고 판단돼 징계를 받을 예정이다.
현행법도 주임 상사가 처한 상황에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군인복무기본법)과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이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성남=뉴시스]김종택기자 = 1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모 중사의 분향소에 유가족이 쓴 추모의 편지가 영정사진 앞에 놓여져 있다. [email protected]
이 조항에 따르면 주임 상사는 A중사로부터 피해사실을 들은 즉시 지휘관에게 보고해야 했다. 하지만 부대관리훈령은 딴소리를 한다.
부대관리훈령 244조는 '성폭력 발생 시 각 부대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공간적으로 우선 분리한다. 이 경우 피해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되 가해자 분리를 원칙으로 한다'며 피해자 의사를 최우선 고려하라고 지시한다.
같은 조에는 '성폭력을 처리하는 자는 피해자와 그 대리인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야 하며, 피해자 또는 대리인의 동의 없이 그들의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어떠한 자료도 공개하거나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도 있다. 피해자 동의가 없으면 보고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KBS가 4일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한 현장검증 사진 44장을 입수해 공개했다. 현장검증은 사건 발생 닷새 뒤인 4월 11일 진행됐다. 2014.08.04. (사진=KBS 캡쳐) [email protected]
이처럼 군인들이 모순적인 법체계로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입법권을 가진 국회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사고 발생 시 보고 의무에 관해 정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공군 이 중사 사건 발생 후인 지난 7월16일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에는 군 내 구타, 폭언, 가혹행위나 성추행 및 성폭력 행위 사실을 알게 된 경우 해당 사실에 관한 보고를 받은 상관은 즉시 군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위반한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했다.
【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육군 28사단 집단 폭행 사망사건에 대한 긴급 현안질의를 위해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8사단 포병대대장과 본부포대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건으로 지난 4월 숨진 윤 일병은 28사단 예하 포병대대 의무반에서 군 복무 중이었다. 2014.08.04. [email protected]
20대 국회에서 임기만료 폐기된 김병기 의원 대표 발의 개정안에는 '성추행 및 성폭력 관련 고충을 상담하고 관리하는 군인은 피해자가 분명히 밝힌 의사에 반하여 보고 또는 신고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김 의원은 의안 설명에서 "각 부대에서는 부대원의 성폭력 관련 고충을 상담하고 관리하는 현역신분의 양성평등담당관을 두고 있다"며 "이들은 비밀유지의 의무가 있음에도 군인으로서 상관에게 보고하거나 군수사기관 등에 신고하도록 규정돼있어 상담자의 신뢰를 상실하고 2차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국회마저 보고와 2차 가해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못하면서 일선 군인들은 행동 기준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해군 여군 중사 사건이 발생하자 '터질 것이 터졌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나온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과 훈령 개정 논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나 "2019년부터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을 추진하다가 이번에 공군 사망 사건을 계기로 양성평등위원회와 민관군 위원회에서도 개정에 공감대가 생겨 개정이 추진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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