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떠난 지 199일, 너무 억울해"…무릎 꿇은 아리셀 유족들
박순관 대표 등 사고 책임자 엄벌 촉구
검찰, 재판부에 주 2회 집중 심리 요구
공장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사진 오른쪽). (사진=뉴시스DB) photo.newsis.com
[수원=뉴시스] 변근아 기자 = "제 아이가 곁을 떠난 지 199일이 됐습니다. 지금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어 눈물 없이 하루를 보낸 적이 없고, 이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막지 못한 저 자신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로 딸을 잃은 A씨는 8일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 심리로 열린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 사건 두 번째 공판기일에서 재판부로부터 의견 진술 기회를 얻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25년 살면서 말썽 한번 부린 적이 없고 착하게 살았다"며 "(아이는) 중국에서 사범대를 나와 선생님을 할 수도 있었는데 부모 사랑이 그리워 한국에 와서 몇 개월 만에 이런 참사를 당했다. 너무 억울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고가의 변호사를 두고 죄를 덮으려고 하는 박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을 30년이고 50년이고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엄중 처벌해 달라. 두 손 모아 빈다"고 재판부에 절을 하며 애원하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아리셀 연구소장으로 근무했던 남편을 잃은 B씨도 미리 준비해 온 A4 용지 3쪽 분량의 의견서를 읽으며 울분을 토해냈다.
B씨는 "코에서 피가 나고, 눈이 빠져있고, 검게 그을린 남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며 "장례를 치른 뒤 다른 유가족들과 노동부, 대통령실, 박 대표의 자택 등을 돌아다니며 우리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아리셀 등을 엄중처벌해달라고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회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고치려고 했으며, 당시 고립된 외국인들을 구조하려 했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맨 앞에서 죽었다. 박 대표 등을 대신해 죽었다고 생각한다"며 "박 대표 등이 남편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분노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유족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내내 박 대표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눈을 감고 있었으며, 박 본부장 역시 고개를 숙인 채 가끔 마른세수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재판부에 의견을 진술한 유족은 총 8명으로 이들 모두 박 대표 등 사고 책임자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다. 발언하지는 않았지만 법정에 방청 온 유족 30여 명은 이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내내 탄식을 내뱉거나 같이 눈물을 훔쳤다.
유족 측 법률대리를 맡은 신하나 변호사는 "지난 공판기일에서 박 대표가 사과문을 낭독했을 때 유가족들의 반응이 싸늘했던 것은 참사를 기억해서가 아니라 지난 7개월 동안의 피고인들 태도 때문"이라며 "피고인들은 철저하게 유가족을 무시해 왔고 만남도 거부했다. 최소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참사의 진실이 드러나고 책임자가 처벌받기만을 원한다"고 다시 한 번 유족 측 입장을 정리해 재판부에 전달했다.
발언이 모두 마무리된 뒤 검찰은 재판부에 이 사건 집중 심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오는 3월24일 박 대표의 구속기간이 만료되기 전 판결이 선고될 수 있도록 주 2회 이상 기일을 지정해 2월 말 이 사건 심리를 종결, 3월 선고가 이뤄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 변호인은 "이렇게 중요한, 중차대한 사고에서는 더욱 엄격한 절차가 준수돼야할 것"이라며 재판부에 2주에 1회 정도 기일을 지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양측의 입장을 모두 들은 재판부는 "재판부 인사이동 여지가 있어 2월 말 재판을 종료하면 3월 선고가 물리적으로 힘들다"며 "신속한 재판도 중요하지만 심도 있게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고, 타협해서 일주일에 1번 정도 재판을 진행하는 게 어떨까 싶다"고 정리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13일 진행된다.
박 대표는 지난해 6월24일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근로자 23명이 숨진 화재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요인 점검 미이행,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 미구비 등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 대표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아들 박 본부장은 전지 보관·관리(발열 감지 모니터링 등)와 안전교육·소방훈련 등 화재 대비 안전관리상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이번 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2021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무허가 파견업체 메이셀 등으로부터 전지 제조공정에 근로자 320명을 파견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박 본부장은 국방부 납품용 전지의 불량을 숨기기 위해 국방기술품질원의 품질검사에 제출한 수검용 전지를 바꿔치기 하는 등 위계로 품질검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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