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헤르손 댐 폭파' 러 주장...더티 밤 공세와 닮은 꼴
전술핵 우려 속 더티 밤, 헤르손 철수 전 댐 폭파…책임 전가 유사
댐 폭파 증거 있다던 러, 주장 철회도…"실질적으로 폭파 불가능"
[AP/뉴시스]우크라이나에 파견된 러시아군 최고사령관 세르게이 수로비킨이 19일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지역의 러시아군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2022.10.19
헤르손 방어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러시아는 최근 2가지의 거짓 위장 전술로 국제사회에 혼선을 꾀하고 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노바 카호우카 댐 폭파 계획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더티 밤 사용 주장이다. 서로 다른 2개의 주장 모두 우크라이나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러시아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러시아의 댐 폭파와 더티 밤 주장은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군 총사령관이 헤르손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순차적으로 제기됐다. 댐 폭파 주장은 헤르손 철수 가능성을 언급한 지난 18일에, 더티 밤 주장은 그로부터 엿새 뒤인 24일에 처음 제기됐다.
앞서 수로비킨 사령관은 지난 18일 러시아 국영TV 로시야 24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광범위한 압박을 받고 있으며 어려운 선택을 마주했다. 헤르손 상황이 쉽지 않다"며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의 카호우카 수력발전소 댐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준비 중이라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점령중인 헤르손에서의 러시아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그 배경으로 우크라이나군이 댐 전체를 폭파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주장한 것이다. 헤르손 탈환 공세에 나선 우크라이나가 수공(水攻)을 꾀하고 있고, 러시아는 헤르손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철수를 결정했다는 의미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군이 헤르손 서부에서 철수하면서 스스로 댐을 폭파한 뒤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모스크바=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가운데)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점령지 병합 기념행사에 참석해 데니스 푸실린(왼쪽)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수반, 블라디미르 살도 헤르손 지역 수반이 웃으며 바라보는 가운데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2022.10.01.
우크라이나 군은 지난 7월부터 안토니우스키 다리 2개, 노바 카호우카 댐 교량을 파괴, 러시아군의 보급로와 퇴각로를 차단했다. 정밀 타격으로 댐 위의 교량만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댐 전체의 파괴는 시도하지 않았다. 댐 전체 파괴 시 자칫 헤르손 전체가 물에 잠기게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댐 파괴 주장은 거짓이라며 반박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대국민 정례 화상연설에서 "노바 카호우카 댐에 러시아군이 지뢰를 매설해 위장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며 "약 1800만㎥의 물을 저장하고 있는 댐이 폭파된다면 80개 이상의 마을에 홍수가 발생해 수십만 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러시아군이 어리석은 생각으로 카호우카 댐 파괴를 위해 지뢰를 매설해 놨다"며 "침략자들은 댐을 폭파로 아군의 진격을 2주 가량 지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잃는 게 더 많다"고 말한 바 있다.
[카호프카(우크라이나)=AP/뉴시스]막사 테크놀로지가 지난 2월26일 제공한 우크라이나 카호프카의 카호프카 수력발전소 댐의 위성사진 이미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의 수력발전소 댐 폭파를 준비하고 있다며 이는 '대규모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난했다고 BBC가 21일 보도했다. 2022.10.21
우크라이나가 댐을 폭파하려 한다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러시아 내부에서 제기되자 러시아 헤르손 점령 당국은 기존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했다.
헤르손 친러 행정부 수반 블라디미르 살도는 이날 텔레그램 채널에 "카호우카 수력발전소 댐 전체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댐 잠금장치 파괴를 하는 경우에도 드니프로 강 상승 수위는 2m 미만에 그칠 것"이라고 적었다.
우크라이나가 미사일 공격으로 완전한 댐 파괴를 준비 중이며, 관련 증거를 보유하고 있다던 자신들의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이와 관련 ISW는 "살도가 자신들의 기존 주장을 철회한 것은 드니프로 강을 건너 대피 중인 민간인과 러시아군의 대규모 이동 과정에 발생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플레세츠크=AP/뉴시스]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에 26일(현지시간) 러시아 북서부 플레세츠크 우주 기지에서 야르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영상을 통해 8개월 만에 실시한 핵 훈련을 참관했다. 2022.10.27.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구소련 국가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IS) 보안·정보 기관장 영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더티 밤 사용 계획을 알고 있다"며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고, 핵심 기반시설 방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외무장관이 번갈아가며 국제사회에 더티 밤 공론화에 집중한 데 이어 대통령까지 가세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더티밤 사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NYT는 보도했다.
서방은 푸틴 대통령이 직접 더티 밤 여론전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실제 핵무기가 사용될 우려가 커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시선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가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기에 앞서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포석으로 수위를 높여가며 우크라이나의 더티 밤 사용 주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블룸버그통신 행사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에게 핵무기 사용 결과에 대해 직접적이고 매우 명확하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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