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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지미 카터, 100세 일기로 별세…역대 최장수 美 대통령(종합)

등록 2024.12.30 06:53:29수정 2024.12.30 06: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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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 자택서 사망

[애틀랜타=AP/뉴시스]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100세. 사진은 지난해 11월28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글렌 메모리얼 교회에서 카터 전 대통령의 배우자 로잘린 카터 여사의 추도식에서 생전 카터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첩이 펼쳐진 모습. 2024.12.30.

[애틀랜타=AP/뉴시스]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100세. 사진은 지난해 11월28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글렌 메모리얼 교회에서 카터 전 대통령의 배우자 로잘린 카터 여사의 추도식에서 생전 카터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첩이 펼쳐진 모습. 2024.12.30.


[서울=뉴시스] 이명동 기자 =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100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 소재 자택에서 사망했다. 부고를 전한 카터 전 대통령의 차남인 칩 카터는 사인을 밝히지 않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역대 최장수 미국 대통령 기록을 가진 인물로 기록됐다.

'세계 평화의 전도사'라는 칭호를 가진 카터 전 대통령은 1924년 10월1일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에 입대했다가 1953년 전역했다. 그 뒤로 고향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땅콩 농장을 운영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63년 민주당의 조지아주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71년 조지아 주지사에 당선했고 1976년 대권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공화당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을 꺾고 백악관 키를 거머쥐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으로 1977~1981년 4년 동안 백악관을 지켰다. 임기 초반 이스라엘-이집트 평화 조약을 뜻하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타결시키며 외교력을 발휘했다.
 
1979년 2차 오일 쇼크 발발로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지자 카터 행정부의 지지율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극이 발생하면서 그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
 
[워싱턴DC=AP/뉴시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로잘린 카터 여사가 1978년 12월13일(현지시각) 수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리는 연례 의회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있다. 2021.07.05.

[워싱턴DC=AP/뉴시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로잘린 카터 여사가 1978년 12월13일(현지시각) 수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리는 연례 의회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있다. 2021.07.05.


결국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로써 그는 '재선 실패 대통령'으로 퇴임했다.
 
그가 재평가를 받게 된 건 퇴임 후 행보 때문이다. 그는 1982년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와 함께 비정부기구 '카터 센터'를 설립해 지구촌 곳곳의 분쟁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 센터를 통해 해외에서 부정 선거 감시, 분쟁 중재, 인권 보호, 보건복지, 교육 등 부문에서 힘을 보탰다. 그는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평화가 필요한 곳에는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오슬로 협정' 중재(1993년), 우간다-수단 분쟁 조정(1999년), 베네수엘라 대통령 소환투표 감시(2004년) 등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카터 전 대통령은 국제 평화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빈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평화상을 거머쥐었다. 이 밖에도 유엔 인권상과 대통령 자유 훈장 등 수많은 인권 관련 상을 받았다.

한국과의 인연도 많다.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79년 한국을 찾아 박정희 전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를 적극 추진했지만 미국 국방부와 의회의 반대로 실현하지는 못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북핵 위기가 불거졌을 때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본명 김성주) 전 북한 주석과 회담했다. 당시 양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합의했지만 김 전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멤피스=AP/뉴시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8월22일(현지시각)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와 함께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국제 해비타트(주거 빈건 퇴치를 위한 집 짓기) 운동에 참여해 공사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08.27.

[멤피스=AP/뉴시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8월22일(현지시각) 부인 로잘린 카터 여사와 함께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국제 해비타트(주거 빈건 퇴치를 위한 집 짓기) 운동에 참여해 공사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08.27.


그는 해비타트(주거 빈건 퇴치를 위한 집 짓기) 운동에도 앞장섰다. 2001년 한국을 방문했다가 충남 아산에서 '사랑의 집 짓기 사업' 자원봉사에도 직접 참여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고메스를 석방하기 위해 두 번째로 방북했다. 이듬해에는 국제사회 원로 모임인 '디 엘더스' 회원들과 다시 북한을 찾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고령에 접어든 뒤로는 고향의 교회에서 활동했다.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한 침례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8월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하면서 당시 91세이던 그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기우였다. 그는 불과 5개월 만에 암 완치를 선언하며 건강을 과시했다.

하지만 흑색종 피부암에 걸린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카터 센터를 통해 임종간호를 받으며 여생을 보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동반자 로잘린 여사의 장례식장에 모습을 나타낸 바 있다. 이달 들어 카터 전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다음 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에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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