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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 받고 후원도 있는데 투잡 뛰는 지방의원들 왜?

등록 2025.03.23 09:02:00수정 2025.03.23 09: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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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충돌 우려 큰 지방의원 겸직…허울 뿐인 신고 제도

대리 경영·품앗이 등 음성화까지 '제 식구 감싸기' 급급

세비·후원금 제도 '의정활동 전념' 방점…허약한 풀뿌리

"의원 존재이유 자기입증" "정치문화 개선에 앞장서야"

세비 받고 후원도 있는데 투잡 뛰는 지방의원들 왜?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풀뿌리 민주주의의 대표인 지방의원들이 본연의 의정활동과 사익 간 이해 충돌 우려가 큰 이른바 '투잡'을 뛰고 있다.
 
신고만 하면 되는 겸직 제도의 허점을 비집고, 의원 직위를 이용한 무분별한 영리 활동도 펼쳐지는 등 도덕적 해이가 선을 넘고 있다.



이제는 의원들 스스로 투철한 공직관을 확립하고, 혼탁한 금권 선거에서 벗어나 정치 후원 문화의 선순환이 안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광주=뉴시스] 광주 서구의회 겸직신고서 (사진 = 광주 서구의회 제공) 2025.03.19.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광주 서구의회 겸직신고서 (사진 = 광주 서구의회 제공) 2025.03.19. photo@newsis.com


투잡 뛰는 지방의원들…구멍 난 겸직 규제

23일 광주시의회·5개 구의회에 따르면 광주 지역 광역·기초의원 92명 중 절반이 넘는 53명(57.6%)이 99건의 겸직을 신고했다. 이 중 절반가량인 26명(37건)은 겸직하고 있는 업체 등지에서 따로 보수까지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본연의 의정 활동과 사익 추구 사이의 경계가 불명확하거나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사례도 있었다.

의장이 운영하는 업체에 공공기관의 특정 사업을 따내고자 동료의원이 취업해 발 벗고 나서거나, 의원 재임 기간 중 취·창업하는 사례도 있었다. 

의원 유관 사업체는 관할 지자체 또는 산하기관 발주 사업에는 참여할 수 없는 등 규제가 있긴 하지만, 현행 겸직 제도에는 허점이 분명하다.

기초의회의 경우, 의장에게 신고만 하면 겸직이 가능하다. 신고만 하면 오랫동안 유지해온 본업인지, 의원 직위를 이용한 영리 활동 우려가 큰 당선 이후 취·창업인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현행 지방자치법 등에 따라 의회 내에서 이해충돌 가능성 등 적절성에 대해 심의하거나 사임을 권고할 수는 있지만, 의장의 재량에 달렸을 뿐이다. 사실상 형식에 불과한 사문화(死文化) 조항일 뿐이다.

겸직하는 사업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보수를 얼마나 받는지 등 자세한 내용은 신고하는 의원 개인의 양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신고서에 제대로 기재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신고조차 하지 않은 지방의원들의 편법적인 사업체 대리 경영 또는 품앗이 영리 활동 등 음성적인 겸직 행태도 문제다.

현직 북구의원은 이른바 '바지 사장'을 내세워 자신이 실질 경영한 업체가  구청 수의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하다 적발,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고향 선배가 대표로 있는 전산업체의 장비 구매를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독려하며 영업 행위를 하거나, 겸직 신고 규정을 어기고 자신 또는 배우자가 운영하는 꽃집에서 승진 화환 등을 판촉한 의원들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의원들의 무분별한 겸직·영리 행위에 제동을 걸 제도적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각 지방의회마다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다수인 정치 지형에서 얽힌 이해관계와 정치 셈법 탓에 자정 작용도 기대하기 어렵다.

'제 식구 감싸기' 탓에, 최근 5년새 파문이 일었던 광주 지역 지방의원 겸직 위반 사례 대부분이 의회 내 공개사과 등 솜방망이에 그쳤다.

일각에선 지방의원 관련 사업체는 해당 지자체 발주 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만큼, 다른 지자체 의원과 이른바 '품앗이' 영업·사업 수주 활동까지 벌이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이러한 선 넘은 의원들의 '투잡' 행태에 제동을 걸려면 겸직 신고 제도의 체계적인 개선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우식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은 "지방의원들이 겸직 신고 제도의 취지조차 이해조차 못 하고 있다. 매달 세비를 받고 있는 의원들이 의정 활동보다도 영리 추구에만 연연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직무유기다. 선출직 공직자로서 책무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권고 정도에 그치는 각 의회 윤리자문위원회 활동을 강화, 의원들의 무분별한 겸직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분기 또는 반기별로 반드시 겸직 사실을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 의회 안팎에서 견제 기구를 둬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3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2.14.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3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가결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2.14. photo@newsis.com



세비·후원금 받는데 왜…문제는 '허약한 풀뿌리'

지방의원의 영리 활동은 선출직의 지위·권한을 부당 이용하거나 본연의 의정활동을 저해할 이해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

때문에 민선 지방자치제 시행 초 '무보수 명예직'이던 지방의원에게도 세비를 지급하는 등 안정적 생계 기반을 마련해 이해 충돌·부패에 취약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강화돼 왔다.

광주 기초의원은 지난해 기준 월정수당·의정활동비로 매달 381만원~421만원씩을 지급받고 있다. 각 의회마다 사정은 다소 다르긴 하지만, 해마다 5000만원 안팎의 세비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의정비 인상 논의 때마다 의원들은 "장애인·청년 등 생계취약계층의 정치 참여를 위해 필요하다", "의정 활동에 전념하려면 세비 보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불투명한 의원 겸직 활동에 대한 허술한 규제, 의정활동 평가 제도 부재 등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 지방의원들의 공·사가 불분명한 겸직 영리 행위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7월부터는 '정치자금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 지방의원들도 합법적이고 투명한 선거 자금을 조달할 길도 열렸지만, 실제 후원회 개설은 극소수다.

광주시의회의 경우 23명 중 6명 만이 후원회를 결성했다. 기초의회의 경우, 북동·서·광산구의회에서 각 1명씩에 그쳤다. 회계 책임자 상근직 채용 등 운영 경비 부담이 크고, 지방의원 후원금 기부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탓으로 풀이된다.
 
한 정당 관계자는 "시기상조일 수는 있다. 지방의회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팽배한 게 엄혹한 현실이다. 의원들 스스로 정치적 효능을 입증해 보여야만 의정비도 현실화할 수 있고 건전한 후원 문화가 정착할 수 있다"면서 "결국은 의원들 스스로 민의의 대변자로서 제대로 역할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지방의원은 "부정하고 음습한 겸직, 영리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세비와 후원금 만으로도 건강한 풀뿌리 정치가 가능하도록 문화와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현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부터 배척해야 한다. 경조사비·찬조금 등 구태의연한 관행부터 조금씩 바꿔나가야, 우리 정치가 조금이나마 더 깨끗하고 나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wisdom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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