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같지 않은 비극" 재개발 붕괴 참사 희생자 추모 물결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추모객이 13일 오후 광주 동구 동구청에 마련된 재개발구역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남의 일 같지 않아요…미리 막을 수 있었던 만큼 안타까운 비극입니다."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 발생 닷새 째인 1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650-2번지.
파란 천막으로 임시로 덮어놓은 붕괴 잔해물 더미 주변에는 철제 울타리가 설치됐고, 주변 나무·가림막 지지대 사이로는 출입 통제용 테이프가 어지럽게 휘감겨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버스가 나란히 정차했던 붕괴 건물 앞 갓길엔 차량 진입 통제용 장애물이 줄지어 설치됐다. 시내버스가 빠른 속도로 참사 현장을 지나갔다.
참사 현장에선 굴삭기 1대가 붕괴 건물 지하층 위에 쌓인 잔해물을 한쪽으로 치우고 있었다.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1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붕괴 참사 현장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행인들이 붕괴 잔해물 더미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13 [email protected]
한 중년 여성은 말문을 잃은 듯 한참을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한 노인은 우연히 만난 시민에게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있었다며 열변을 토했다.
건너편 도로를 지나는 버스에 탄 시민들도 차창 너머 산처럼 쌓인 잔해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민 이세영(50·여)씨는 "반 년 전 이사를 가기 전까지 참사가 난 54번 버스와 정류장을 자주 이용했었다. 나를 비롯한 누구든 당할 수도 있었던 참변이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 아프다"며 "희생자들이 편히 쉬길 바란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유가족·부상자들도 하루 빨리 심리적 안정을 되찾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1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붕괴 참사 현장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정차한 한 버스에서 승객들이 붕괴 잔해물 더미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13 [email protected]
수십 년째 학동에 거주한 심대현(79)씨는 "본래 건설사 사옥으로 지어져 튼튼하기로 유명했던 건물이었다. 한 순간에 저런 잔해더미로 변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사고가 참 허망하다"라고 말한 뒤 버스에 올랐다.
한 상인은 "철거 작업을 할 때마다 불안에 떨었다. 너무 위험하다고 정류장 만이라도 옮겨야 한다고 했는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건너편 정류장 주변 인도에 전날 놓였던 하얀 안개꽃은 사라졌지만, A4용지 손글씨 추모 글은 그대로였다.
고1·고3 아이들의 엄마로 자신을 소개한 월남동 주민이 쓴 글에는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건 살아있는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추모글 한 켠에는 전날 없었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중학교 후배-'라는 문구도 새로 쓰여져 있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1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붕괴 참사 현장 건너편 버스정류장 인도에 한 시민이 쓴 추모하는 글이 붙어있다. 2021.06.13. [email protected]
같은날 오후 광주 동구 서석동 동구청 앞 합동분향소에는 희생자 9명의 넋을 위로하고 조의를 표하려는 추모객이 잇따랐다.
방명록에는 '안타깝습니다 그곳에서 편히 쉬길 바랍니다' '천국에서 안식하소서' '편안한 곳으로 가세요' '가슴 아픈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등의 글이 쓰여졌다.
시민들은 국화 한 송이를 제단에 조심스럽게 놓은 뒤 고개를 숙이고 분향을 마쳤다. 한 모녀는 차례로 헌화한 뒤 양손을 모아 한참을 기도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13일 오후 광주 동구청에 마련된 재개발 붕괴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추모 시민들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2021.06.13. [email protected]
조문을 마친 시민들은 안전불감증이 낳은 사회적 참사라면서, 사고 근본 배경으로 꼽히고 있는 건설현장 부당 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구 운림동에 사는 김지은(52·여)씨는 "건설사 하도급 문제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적은 돈으로 사업을 수주했고 비용을 줄이려다보니 이런 참사가 빚어진 것이다. 제도를 반드시 손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교사 박모(43·여)씨는 "학생부터 노인까지 평범한 시민들이 억울하게 숨졌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추모했다"며 "재개발 현장에서 안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합동분향소 추모객은 2697명이다.
지난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5층 건물 붕괴 사고로 건물 잔해가 정차한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9명이 숨졌고, 8명이 크게 다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한편, 합동분향소는 광주 동구 서석동 동구청 앞에 마련됐으며, 희생자 발인은 오는 14일까지 이어진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1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붕괴 참사 현장을 지나던 시내버스 빈 좌석 너머 잔해물 더비가 보이고 있다. 2021.06.13 [email protected]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