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넘어북한]김정은 권력 승계 10년…우상화 본격 진행중
노동신문 "혁명령도의 10년" 시리즈 기사 게재중
중평남새온실농장 김정은 단독 명의 사적비 처음 건립
'자애로운 어머니당을 이끄는 수령' 강조가 핵심
[평양=AP/뉴시스]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17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 3일 차 회의 중 자신이 서명한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8일 전날의 회의 소식을 전하며 "새로 출범한 미 행정부의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정책 동향을 상세히 분석하고, 향후 대미 관계에서 견지할 전략 전술적 대응과 활동 방향을 명시했다"고 보도했다. 2021.06.18.
이번 주 창넘어 북한의 주제는 우상화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가 매일같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만, 최근 김정은에 대한 직접적인 우상화 움직임이 부쩍 심해지는 걸 계기로 다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김일성이 정적들을 제거하고 1인 독재체제를 완성한 1960년대부터 북한은 '유일영도체계'라는 체제 운영방식을 고수해왔습니다. 유일영도체계는 '수령', 즉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권위와 능력을 신격화하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전지전능하면서 인민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수령'이 있으니 '모든 인민들이 무조건, 죽을 때까지 '수령'의 명령과 지도를 잘 따르기만 하면 나라가 강성해지고 인민들은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인류 역사상 한 나라의 권력자가 북한의 유일영도체계처럼 극단적인 권위조작을 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조금이나마 유사한 사례들로 고대 중국의 진시황, 몽골 제국의 징기스칸, 중세 프랑스의 루이 14세, 나치 독일의 히틀러, 구 소련의 스탈린 같은 절대권력자들을 꼽아볼 수 있겠네요. 그렇지만 그들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통치 방식은 북한의 유일영도체계만큼 정교하지 않습니다.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에서 모든 매체에 실리는 글은 거의 반드시 김일성이나 김정일, 최근에는 김정은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인용된 말씀은 반드시 꺽쇠 괄호(《》) 안에 고딕글자로 표기합니다.
지난 1일자 노동신문은 1면에 6꼭지의 글을 실었습니다. 그 중 김덕훈 내각총리가 평안남도 각지를 둘러보면서 경제상황을 점검한 것을 알리는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꼭지 기사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습니다.
이날 1면부터 6면까지 실린 기사가 모두 31건인데 사진기사와 해외 코로나 상황을 알리는 기사들을 제외한 21건의 기사 가운에 인용문이 없는 기사는 모두 4꼭지 뿐이었습니다.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조선중앙TV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2돌(9·9절)을 맞아 각계층 근로자, 조선인민군 장병들이 평양 만수대 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아 헌화했다고 밝혔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email protected]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분들한테 물어보기도 했지요. 제 생각과는 달리 그분들은 북한에 있을 때 이상하다는 느낌은 갖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수령 말씀을 인용하면서 시작하지 않는 글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북한은 이런 방식으로 주민들의 머릿속에 '수령'이 '전지전능한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수령'이 모르고 지나가는 일은 없으며 또 해법까지도 완벽하게 제시하고 있으니까요.
우상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인민들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어버이'입니다.
북한이 입버릇처럼 쓰는 '어머니당'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노동당이 어머니처럼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안쓰러워하면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는 표현입니다.
5일자 노동신문에 화상을 입은 근로자를 살려낸 에피소드가 실렸습니다. 전신 70%에 2~3도의 화상을 입은 근로자를 평양의학대학병원과 김만유병원 의료진들이 불가능에 가까운 노력 끝에 회복시킨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기사입니다.
기사는 "어머니당의 사랑이 미치는 곳에서는 반드시 기적이 창조된다는 그들(의료진)의 확고한 신념" 덕분에 소생했다고 썼습니다. 병원 원장부터 의사, 간호사까지 모든 직원들이 자기 피부를 기꺼이 잘라내 화상 치료를 도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회복된 환자는 "어머니당의 품속에서 두 번 다시 태어난 이 몸을 조국과 인민이 바라는 길에 서슴없이 깡그리 바치겠습니다"라고 격정을 터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민을 위해 무한한 사랑을 펼치는 어머니당의 보살핌이 있어 인민들이 고난을 겪고 다시 일어서고 그렇게 일어선 인민은 다시 어머니당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 어머니당을 만들고 이끌어온 수령이 바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라는 것이 북한에서 벌어지는 '수령 우상화'의 핵심입니다.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올해 6월27일자부터 김정은 권력승계 10년차를 기념하는 시리즈 기사를 시작했다. (출처=노동신문) 2021.06.27.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것이 2012년 겨울입니다. 올해가 햇수로 10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를 계기로 얼마 전부터 노동신문이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위대한 혁명령도의 10년"이라는 시리즈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6월27일자에 첫 기사가 실렸고 지난 1일에 네 번째 기사가 실렸습니다. 거의 매번 1개면 전면을 할애한 기사지만 비슷비슷한 내용들을 반복해서 쓰고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연말까지는 시리즈 기사를 계속 내보낼 것 같네요.
네 건의 기사 제목은 "수령영생 위업 실현의 성스러운 새 력사를 펼치시여", "자주의 기치, 사회주의 기치높이 힘차게 전진해온 불멸의 려정", "당의 령도력과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신 불멸의 업적", "우리 당을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진정한 어머니당으로 강화 발전시키시여"로 돼 있습니다. 모두 김정은 총비서가 '어머니당'의 발전에 불멸의 업적을 세웠다고 강조하고 있네요.
김정은 우상화 작업에 얼마 전 새로운 사실이 하나 추가됐습니다. 바로 김정은 단독의 '현지지도 사적비'를 건립하기 시작한 겁니다.
지난 4일자 노동신문은 함경북도 중평남새온실농장에 "김정은동지의 현지지도사적비 '길이 빛나라 중평땅에 어린 인민사랑의 자욱이여'가 정중히 건립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서울=뉴시스] 2016년 평양체육관 앞에 건립된 '현지지도 사적비'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이 함께 올라있다. 김정은의 이름이 현지지도 사적비에 처음 오른 사례다. 김정은 단독의 현지지도 사적비는 최근 함경북도 중평남새온실농장에 처음 건립됐다. (출처=노동신문).
'현지 지도'는 사전에 철저한 조사와 준비를 거쳐 이뤄집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수령'이 방문하고 현장에서 해결책 또는 지원책을 제시함으로써 방문한 시설이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사적비가 건립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됐습니다. 우상화의 대표적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정은의 이름이 사적비에 오른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6년 4월 건립한 평양체육관 현지지도 사적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노동신문은 "우리 체육인들과 인민들에게 보다 훌륭한 체육문화생활 조건을 마련해 주시려고 온갖 노고와 심혈을 다 바쳐오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불멸의 혁명사적이 역력히 어리어 있다"고 소개함으로써 김정은을 김일성과 김정일에 업혀가는 지도자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정은 단독 명의의 현지지도 사적비가 처음 등장한 겁니다. 이 사실은 김정은이 더 이상 할아버지, 아버지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 절대자가 됐음을 상징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지난해부터 예상됐던 일입니다.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때 창넘어 북한에서 "'김정은 조선' 시동 건 북한…우상화 본격화됐다"는 제목으로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11일 오전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을 녹화 방송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캡처) 2020.10.11. [email protected]
북한의 김씨 일가 우상화 현상을 소개하면서 제 머릿속에는 '도대체 왜 우상화를 하는 걸까?', '그렇게 위대한 지도자라면 굳이 우상화에 매달리지 않아도 저절로 권위가 설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도무지 체제를 유지할 수가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걸까?' '나같이 생각하는 북한 주민들은 얼마나 될까?' 등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때가 올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기루처럼 한 순간에 없어질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면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이죠.
북한 체제가 소멸하는 때가 바로 그 때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북한이 현대적 의미의 당당하고 정상적인 국가로 환골탈태할 수 있다면 우상화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그런 때가 올 순 있는 건가요?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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