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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카터, 한국과도 오랜 인연…주한미군 철수하려다 무산

등록 2024.12.30 12:11:49수정 2024.12.30 14: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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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韓인권·유신에 비판적…미군철수 추진

감축 시작했으나 의회·군 반대 등으로 결국 무산

퇴임 후엔 대북외교 앞장…김일성과 유일 회담

[워싱턴=AP/뉴시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00세를 일기로 29일(현지시각) 별세했다. 사진은 카터 전 대통령이 1977년 1월20일 취임식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2024.12.30.

[워싱턴=AP/뉴시스]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00세를 일기로 29일(현지시각) 별세했다. 사진은 카터 전 대통령이 1977년 1월20일 취임식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2024.12.30.


[워싱턴=뉴시스] 이윤희 특파원 = 1977년 3월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선 과정에서 공약했던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공약을 실제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카터 행정부는 박정희 정권 아래 한국의 인권상황과 유신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었기에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에 나설 계획이었다.

같은해 5월 존 싱글러브 당시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이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 비판하자, 백악관으로 불러들인 뒤 강제퇴역시킬 정도로 카터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에 진심이었다.

카터 행정부는 1977년 7월 1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를 통해 철군일정을 합의했고, 이듬해 3400명을 1단계로 철수시켰다. 이어서 1979년까지 2600명, 1980년까지 9000명을 추가로 감축하기로 했다.

수세에 몰린 한국 정부는 1979년 카터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북괴로 하여금 군사, 정치적 오판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정책시까지 철군을 중지할 필요성이 있다"며 "(인권 문제는)한국은 미국과 같은 정치 목표를 추구하고 있으나, 북괴의 집요한 군사위협에 직면해 국가안보를 보전하고 국민복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준비한 사실이 2010년 외교문서 공개로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시도는 의회와 군의 반대 속에 박 대통령이 돌연 서거하면서 중단됐다.

현재 안보상황을 고려하면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결정이었지만, 한국의 인권상황에 관심을 갖고 실제 행동에까지 나섰던 점은 높이 평가된다. 다만 박 대통령 서거 후 적극적인 개입을 피하면서 신군부 집권과 12·12 쿠데타를 사실상 묵인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29일(현지시각) 향년 100세로 별세한 카터 전 대통령은 최장수 미국 대통령으로 유명하며 이처럼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카터 재단을 설립하고, '평화 전도사'를 자처하며 세계 분쟁 해결에 적극 뛰어들었다. 한반도 문제 역시 여기 포함돼,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대북 평화 외교에 앞장섰다.

[플레인스=AP/뉴시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39대)이 조지아주 플레인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0세. 역대 미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운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다양한 평화·인권 활동으로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았다. 사진은 카터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는 모습. 2024.12.30.

[플레인스=AP/뉴시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39대)이 조지아주 플레인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0세. 역대 미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운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다양한 평화·인권 활동으로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았다. 사진은 카터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는 모습. 2024.12.30.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 핵 위기가 치솟자,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김 주석과 만난 것은 카터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후 서울을 찾아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고, 남북 정상회담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발표했고, 한반도 긴장이 크게 완화됐다.

하지만 그해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에도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 억류돼 있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고메스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이듬해에는 한국계 미국인 전용수 목사 석방 등을 위해 북한을 찾았으나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 귀국했다.

한편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주거 빈곤 퇴치를 위한 해비타트(집 짓기) 운동도 열심히였는데, 2001년에는 충남 아산을 직접 찾아 '사랑의 집 짓기 사업' 자원봉사에 직접 참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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