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엄마는 비행기 타고 멀리 간 것"…딸 잃고 손주에 건넨 위로
중·고등학생 자녀 둔 큰 딸, 친구들과 여행서 참변
손주들에 당부…"마음 속에 품고, 사진으로 달래자"
여전히 시신 인도받지 못한 유족의 마지막 바람은
[무안=뉴시스] 이영주 기자 = 30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이 새롭게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명단 발표에 오열하고 있다. 2024.12.30. [email protected]
[무안=뉴시스] 조성하 기자 = "내가 즈이한테 그랬어. 느그 엄마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비행기 타고 멀리 가서 지금 천천히 걸어오니까…"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흘째인 31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 노란 구호텐트 앞에서 만난 정용식(78·가명)씨는 허공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47살 딸을 먼저 떠나보낸 그는 이날 아침 손주들에게 '마음속에 엄마를 품고, 엄마가 보고 싶으면 토요일 일요일 찾아가서 사진 보고 오고. 그렇게 하자'고 당부하고 다시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큰 딸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정씨는 사위로부터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택시를 타고 달려왔지만, 손주들에게만큼은 알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결심은 쉽게 무너졌다. "그래도 이야기를 해줘야 쓰겄더만. 즈그가 뉴스랑 인터넷을 보고 더 잘 알고 있데" 정씨는 이렇게 말했다. 소식을 듣고 실신한 아내는 손주들과 광주에 머물며 청심환에 의지해 간신히 버티고 있다.
딸은 가정을 꾸리고서도 정씨 부부와 한 동네에 살며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특히 정씨가 딸의 동선을 아내를 통해 알 정도로 모녀 사이는 각별했다.
정씨는 "우리 딸. 지금은 신체 일부가 손상돼 DNA 검사로 이제 찾아가고 있는 모양"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우리 딸'을 발음하는 정씨의 텅 빈 두 눈은 질끈 감았다 뜰 때면 눈물이 맺혔다.
정씨는 지난밤 사위와 함께 딸의 모습을 봤다. 그는 "너무 가슴 아프게 변형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정씨는 "장례식장으로 빨리 옮기고 싶지만 지금 신체 일부분을 찾지 못한 상황이라 그렇게 안 되고 있다"며 한참 동안 양손을 주물렀다.
정씨의 올해 마지막 바람은 신속히 딸의 시신이 수습돼 장례 절차를 밟는 것이다.
당국은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는 등 사흘째 사고 수습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사망자 179명 중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174구다. 이 가운데 5명의 시신만이 유가족들에게 인계돼 장례 절차를 밟고 있다.
수습된 유해는 무안공항 격납고 냉동 컨테이너에 임시 안치된 상황이며, 수사기관의 검안·검시 절차가 완료된 뒤에야 유가족에게 인도된다.
앞서 태국 수도 방콕에서 출발해 무안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던 제주항공 7C2216편은 지난 29일 오전 9시3분께 공항 착륙 도중 랜딩기어(바퀴 등 착륙장치)를 펼치지 못하고 활주로를 이탈, 공항 외벽과 충돌했다. 여객기는 충돌 직후 산산조각 난 뒤 화염에 휩싸였다.
사고 여객기에는 승객 175명, 승무원 6명 등 모두 181명이 탑승했다. 태국인 2명을 제외한 나머지 탑승객 전원이 한국인으로, 승무원 2명을 제외한 179명이 전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안=뉴시스] 이영환 기자 = 제주항공 소속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29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유가족들을 위한 쉘터가 마련되어 있다. (공동취재) 2024.12.2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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